1971년, 미국의 라디오에서 부드럽게 흘러나오는 멜로디 하나가 있었다. Bread의 ‘If’. 베트남 전쟁의 포연이 아직 가시지 않은 그 해, 젊은이들은 거리로 나서 “평화를!”을 외쳤고, 부모들은 아들들의 징집 소식을 받으며 밤을 새웠다. 그런데 이 노래는 총소리나 시위 구호가 아니라, 아주 조용한 ‘만약’으로 시작했다. “If a picture paints a thousand words, then why can’t I paint you?”
그 한 마디가, 전쟁의 한복판에 선 한 청년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이름은 제이크. 22살, 캘리포니아 출신의 평범한 대학생이었다. 그는 징집 영장을 받기 전, 여자친구 엠마와 함께 해변을 거닐며 “전쟁은 곧 끝날 거야”라고 속으로 되뇌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정글 속 진흙탕에서, 그는 매일 사진 한 장을 주머니에 넣고 다녔다. 엠마가 웃고 있는, 그 평범한 흑백 사진. 그런데 이상했다. 사진은 천 마디 말을 담는다던데, 왜 엠마의 진짜 미소는 담지 못할까. “If a picture paints a thousand words…” 그는 총을 들고 있으면서도 그 가사를 흥얼거렸다.
사회는 이미 산산조각 나 있었다. 워싱턴에서는 반전 시위대가 연기를 뿜으며 행진했고, 대학 캠퍼스에서는 꽃을 든 학생들이 “Hell no, we won’t go!”를 외쳤다. TV 화면엔 매일 베트남의 불타는 마을이 흘러나왔다. 사람들은 서로를 믿지 못했다. 정부는 “승리”를 외쳤고, 청년들은 “죽음”을 느꼈다.
제이크는 밤마다 무전기를 켜고 라디오를 찾았다. 그곳에서 ‘If’가 흘러나오면, 그는 잠시 총을 내려놓고 눈을 감았다. 가사는 반복되는 ‘If’로 가득했다. 만약 그림이 천 마디를 그린다면, 만약 얼굴이 천 척의 배를 띄운다면…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일들을 상상하며, 그는 사랑을 그렸다. 말로 다 할 수 없는, 사진으로도 담을 수 없는, 그 순수한 그리움을. 전쟁은 사람을 숫자로 만들었지만, 이 노래는 사람을 다시 사람으로 되돌려놓았다. 친구 하나가 폭격에 쓰러진 날, 제이크는 편지 한 통을 썼다. “엠마, 만약 내가 돌아간다면… 아니, 돌아갈 수 있다면, 네 손을 잡고 그냥 걸을 거야. 말 없이.”
그 ‘만약’은 단순한 로맨스가 아니었다. 1970년대 초, 모두가 불안에 떨던 시대에 이 노래는 조용한 반항이었다. 사랑은 전쟁보다 무거운 주제가 될 수 없다는 듯, 그러나 사랑만이 그 무게를 견딜 수 있다는 듯. 사회 혼란 속에서 사람들은 서로를 잃어가고 있었다. 부모와 자식, 연인과 연인, 심지어 자신과 자신. 그런데 Bread는 그 상처를 ‘If’라는 가벼운 가정법으로 감쌌다. 너무 진지하지 않게, 너무 아프지 않게. 마치 “괜찮아, 아직 꿈은 남아 있으니까”라고 속삭이는 듯했다.
그러던 어느 날, 제이크는 귀환했다. 다리 한쪽을 잃었지만, 마음 한구석은 온전히 남아 있었다. 공항에서 엠마를 만났다. 둘은 말없이 포옹했다. 그때 라디오에서 ‘If’가 흘러나왔다.
세상이 그의 눈으로 엠마를 볼 수 있다면, 전쟁은 애초에 없었을 거라고. 그 순간, 1970년대의 모든 아픔이 한 장의 그림처럼 스쳐 지나갔다. 포연, 시위, 눈물, 그리고 그 한 곡의 멜로디.
오늘날 우리가 그 노래를 들을 때, 여전히 그 ‘만약’이 가슴을 울린다. 사회가 또다시 혼란스러울 때, 전쟁의 그림자가 드리울 때, 우리는 문득 라디오를 켠다. 그리고 속으로 되뇌인다. 만약 사랑을 그릴 수 있다면, 만약 그 얼굴이 우리를 천 갈래로 인도한다면… 우리는 어디로 갈까.
그리고 그 질문 끝에, 아주 작은 미소가 피어난다.
“사랑은 말로 다 할 수 없는 것, 그러나 바로 그 때문에 영원하다.”
— 레오 톨스토이
그가 우리에게 남긴, 그 오래된 진리처럼.

















